날치기! 유노동 무임금!
근로자의 날, 아니 '노동절'에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새로운 법칙을 창조(?)했다. 앞으로는 무노동 무임금이 아니라, 유노동 무임금이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미 1월 1일 노동조합법을 '날치기'한 전례가 있고, 그에 앞서 '미디어법'도 날치기한 국회에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는지 참으로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며칠 전에는 한 국회의원이 자신들이 만든 법을 어겨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긴 자기가 만든 법-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른바 신행정수도법)-을 위헌이라고 소송을 벌인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저들은 항상 "막 해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악법은 악법을 부른다
앞서 말한 미디어법, 노동조합법, 유급근로시간면제한도가 가지는 공통점은, 날치기로 통과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셋 민생을 어렵게 만드는 악법이라는 점이다.
미디어법은 대기업 중심의 미디어 시장 재편과 맞물려 중소 업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법률이다. 이는 곧 중소업체의 감소, 그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물론 미디어법이 가지는 자체적인 독소조항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조합법은 유급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 준 법안이다. 이것 역시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안 그래도 한국의 노동법은 사용자에게 절대 유리하게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무소불위의 채찍까지 들려주겠다고 협박하는 개정안이 1월 1일의 개정안이다.
그리고 이번에 통과된 유급 근로시간 면제 한도에 관한 법률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 유노동 무임금이라도 합법이라는 법안이다. 보통 노동 계약에서,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시간당 얼마를 받는다고 맺는다. 그 시간보다 더 일하면? '시간 외 수당'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돈을 주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유노동 무임금을 사실상 합법화한 거다.
문제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에서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정말로? 대부분의 직장에서 지각 등에 대해 벌칙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퇴근 시간을 경영자가 임의로 늦출 수 있다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날 사용자가 시킨 일 때문에 밤 늦게 퇴근했다가 피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지각했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지금까지는 사용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적으로 노동자의 잘못이다. 그게 싫으면 직장을 그만 둬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선택지가 다음과 같았다.
- 돈 받고 시간 외 근로를 할 것인가?
- 돈 안 받고 좀 일찍 퇴근를 할 것인가?
이 경우 대부분 1번을 선택해 왔다. 괜히 사용자에게 밉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몸이 몹시 피곤하다거나, 감기 등의 질병을 앓고 있을 때는 정시 퇴근을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이 바뀐다.
- 돈 안 받고 더 일할 것인가?
- 돈 안 받고 좀 일찍 퇴근를 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사용자에게 밉보이는 것은 노동자의 책임이다. 그럼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설마 어차피 돈을 못 받으니 그냥 퇴근하겠다? 그런 간 큰 노동자가 있을까?
제한되어야 할 유급 근로시간 면제 한도
대부분의 선진국은 엄격히 제한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의 사회는 일자리가 노동자보다 적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자리 100개에 노동자가 101명 있는 시대라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 유급 근로시간을 면제해 주면 100개 일자리를 90명이 분담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한국에서는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OECD 국가에서는 1년에 1400~1500 시간을 평균적으로 일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1900~2000 시간 정도를 일한다. 무려 500시간을, 날수로 환산하면 60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만약 해당 시간을 전부 유급 근로시간으로 규정했다면 그렇게 일을 시킬 사용자가 있을까? 참고로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30~45분 정도씩 더 일한다고 하니까, 하루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아놓고 보면 어마어마하다. 그것만 따져도 약 1백 시간의 공짜 일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4,110원(2010년 기준)인데, 이게 터무니없이 싸다. 이것만 받아서 최저생계를 유지하기는 매우 힘들다. 농촌 지역에서야 어떻게 어떻게 삶을 꾸릴 수 있겠지만,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니 주거비 빼고 나면 밥 먹고 살기도 힘들다. 결국 주거비 처음부터 최저임금이 최저생계가 가능한가를 따져서 정한 게 아니라 사용자가 그것만 주고 싶다고 해서 정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심지어 시간제 근로자는 그것도 안 준다. ㅡㅡ;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시간제 근로자에게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적용하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지금도 건축 공사 현장에서는 관행적으로 반일-하루 일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돈을 안 주는데, 이게 아예 합법화 된다면? 안 봐도 비디오다.
유급 근로시간 면제 = 유노동 무임금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엄격히 제한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수많은 시간제 근로 일자리가 생긴다.
단순하게 보자.
한 사람이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 가끔 2시간 추가로 일했다. 이때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10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줘야 한다.
그런데 유급 근로시간 면제가 적용되면? 유급 근로시간 면제가 2시간 적용되면 8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 주면 된다. 유급 근로시간 면제가 1시간이라면 9시간분의 임금을 주면 된다.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반드시 13시간의 일을 해야 하는 직종이 있다고 가정하자. 원칙적으로 8시간 기본 임금에, 4시간 시간 외 기본 임금, 1시간의 시간 외 기본 임금의 1.5배를 줘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는 13시간분의 임금을 주면 되겠지만, 마지막에 붙은 1.5배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총계 13.5시간분의 임금을 줘야 한다. 마지막 한 시간은 1.5시간분의 임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야간근로라면 앞의 4시간 분의 임금도 50%가 더해지고, 마지막 1시간에는 이미 늘어난 임금에 다시 50%가 붙는다. 야간 근로였다면 8 + (4*1.5) + (1 *1.5 * 1.5) = 8 + 6 + 2.25 = 16.25 시간분의 임금을 줘야 한다.
여기에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2시간 적용하면? 총 근로시간이 11시간으로, 기본 근로 8시간에 시간 외 근로 3시간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11시간분의 임금만 주면 땡이다. ㅡㅡ; 야간 근로라고? 그래도 12.5 시간으로 16.25 시간에 비해 거의 4시간 분의 임금이 줄어든다. 유노동 무임금이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그래도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에게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 뭔지 아느냐고 묻고 싶다. 바로 747공약인데, 7% 성장, 4만 불 소득, 세계 7대 선진국이 그것이다. 이때 현재의 세계 7대 선진국이 모두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만약 대한민국이 세계 7대 선진국이 된다면(이명박 임기 동안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 걱정 마라!), 유일하게 유급 근로시간 면제를 폭넓게 허용하는 나라가 된다. 풋! 그냥 웃지요.
아무튼 앞서 말한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직장이 있다면, 유급 근로시간 면제가 엄격히 제한된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 하나는 기존 직원에게 12시간 일을 시키고, 시간 외 수당 4시간치를 더 준다. 다른 하나는? 당연히 시간제 근로자를 들여서 일을 시킨다. 이 경우 명목상 시간제 근로자이지 실제로는 상근직(월급제 근로자)에 버금가는 노동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세계 7대 선진국에서는 이 방법으로 실업자를 구제하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세계화에 역행하고 있다. 또한 이 경우에 시간제 근로자가 월급제 근로자가 되더라도 하루 4시간의 노동계약을 8시간짜리로 바꿔 줄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시간제 근로자와 정직원(상근직, 월급제 근로자)의 차이를 근로 시간의 차이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유급 근로시간 면제 한도 법률은 그러한 세계화에 역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일자리 창출을 포기한 법안인 셈이다.
마치며
어찌된 일인지, 우파 보수 정부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반보수적인 법률이 자주 등장한다. 보수적 법률은 사회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을 제정 및 개정된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반좌파적 법률은 모두 사회 안정성을 해치고, 사회적 인프라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제정 및 개정되는 반보수적인 법률로 변질되고 있다. 정말이지 이명박에게 보수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의 명언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가 바보이리라.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